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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콜카타
추천 : 146 이름 : kconsultancy 작성일 : 2018-03-20 10:35:48 조회수 : 824
안녕하십니까? 까마인디아 유병연 사원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델리 이전의 인도 수도였던 콜카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옛 명칭은 캘커타였으며, 1995년에 콜카타(Kolkata)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적으로는 캘커타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깊고 넓은 수로가 있어 큰 배의 출입이 가능하여 뭄바이에 이어 인도 제2의 무역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벵골 주의 주도입니다. 기후는 3~9월까지는 매우 덥고 6월부터 9월까지의 몬순기간에는 월200mm이상의 비가 내립니다.

17세기까지는 작은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17세기 말인 1690년에 영국 상인이 전진기지를 건설하고 6년 후에는 윌리엄 요새를 구축하면서 대도시로의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인도가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해서 식민지화 되는 동안 수도였고, 영국 본국의 직할식민지가 된 후에도 뉴델리 건설(1912) 때까지 수도로 있었습니다. 영국이 캘커타를 발전 시킨 이유는 인도의 내륙지방은 너무 덥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생활하는데 많은 불편함을 겪었다고 합니다. 또한 근처 아쌈지방과 다즐링 지역에서는 차(tea)가 많이 나는데, 이러한 차들을 영국으로 빠르게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 근처에 큰 항구가 필요했습니다.

뭄바이가 서구 도시와 공통적인 구조를 지니고, 델리는 신구(新舊)의 두 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는 데 반하여, 콜카타는 인도와 서구의 양(兩) 요소가 혼재하여 주정청(州政廳)이나 빅토리아기념관 등의 건축물과 이슬람화된 거주지구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시 및 교외에는 인도 최대 규모인 콜카타대학의 여러 학부가 있습니다. 항공로로 국내· 국외의 각지와 연결되며 또, 대안의 하우라역에서 출발하는 간선철도가 델리, 마드라스 등으로 통한다. 콜카타는 대상공업도시이나, 반면 빈곤한 하층 시민의 수가 많고, 근래 방글라데시의 난민유입으로 그 상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콜카타는 또 예로부터 사회개혁운동·민족운동·혁명운동의 중심지이며, 람 모한 로이를 비롯하여 많은 민족운동지도자, 혁명가를 배출하였습니다.

콜카타의 또다른 특이점은 인도에서 유일하게 크리켓보다 축구가 인기가 많은 지역입니다. 지역 라이벌인 모훈 바간과 이스트 벵골의 경기는 12만명을 수용 가능하는 스타디움을 매진하게 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습니다.

인도의 유명 시인인 타고르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곳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콜카타 자체의 인구는 600만명 정도이지만, 주변으로 권역을 넓히면 3,500만명에 육박할 정도의 인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캘커타는 델리와 뭄바이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도시입니다. 영국 식민지 때 그 지배의 중심지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영향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인도 내에서도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도시지만, 이곳에서 신구의 조화를 새롭게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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