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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최초의 인도인 왕비②
추천 : 1 이름 : kconsultancy 작성일 : 2019-07-10 13:16:46 조회수 : 10
안녕하세요, 까마인디아 강지윤 사원입니다.
저번 칼럼에 이어 한국과 인도 사이의 최초의 결혼이라고 여겨지는
김수로왕과 ‘허황옥’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제가 이 설화를 접하고 의문이 들었던 점은,
이 이야기가 시조 설화임에도 불구하고,
김수로 왕이 타지에서 온 사람을 왕비로 삼았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국가의 정체성 혹은 뿌리를 보여줄 수 있는 시조 설화에서의
이러한 요소를 삽입한 배경에는 ‘문화적 결합’을 강조하려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유타국에서 허황옥과 함께 온 친정오빠의 경우 불교 승려였다는 설이 전래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가야국에 불교가 전래된 경로를 설명하기 위해 ‘허황옥’이 언급된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불교사학계에서도 수로왕이 허황옥을 신부로 맞이할 때 인도의 불교가 함께 들어온 것을
가야불교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데요.
뱃길을 통해 허황옥과 함께 온 오빠 장유는 인도의 고승으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을 통해 가야가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국가가 되었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가야 시기 ‘불교 유입설’은 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해 인도에서 건너온
허황옥 일행이 피사석탑을 들여오고, 또 그의 오빠인 장유가 가야 영토 곳곳에 사찰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에 더욱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편으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에서 또 의문이 들었던 사항이 존재하는데요.
8,000km의 거리인 해안길을 통해 인도에서부터 가야국까지 온 ‘허황옥’에 관한 것입니다.
수로왕과 허황옥이 결연을 맺고,
둘이 힘을 합쳐 가락국의 문물제도를 온전히 정비하였다는 서사단락 또한 존재하는데요.
위의 두 꼭지에서 인지했던 점은 ‘허황옥’을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대 시기, 8000km나 되는 바닷길을 건너오는 것은 운송수단이 발달한 오늘날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매우 험난하고도 장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허황옥이 금수, 능라, 옷, 필단, 금은, 주옥, 경구, 장식구 등을 배에 가득 싣고 왔다는 서사가 존재하는데,
이 구절에서 ‘허황옥’이 가야국에 신문물을 전래한 당사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먼 바닷길을 건너와 새로운 문물을 직접 전파하고 이를 토대로 가야국의 문물제도를 정비한 ‘허황옥’을 매우 주체적인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100여년의 기간동안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슬하에
10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게 되는데요.
이 중 아들은 이후 김수로왕의 뒤를 이어 가야국의 왕이 됩니다.

허황옥은 김해 허씨의 시조모라고 현재 묘사가 되고 있는데요.
고대 시대에서부터 전래되고, 실제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한국과 인도 사이의 최초의 국제결혼이라고 볼 수 있는 아유타국의 ‘허황옥’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의문점을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들이었습니다.

특히나, 고대시대에 다른 문화와의 결합의 요소를 강조하는 설화를 통해
확대해서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원류라고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한국과 인도 사이의 최초의 국제결혼이라고 볼 수 있는
설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하여 본인의 의견 혹은 관련되어 더욱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다면
주저 없이 댓글 남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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